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조디악(Zodiac, 2007) 은 1960~7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공포로 몰아넣은 ‘조디악 킬러’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범죄 스릴러를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언론의 보도 방식, 수사의 한계, 그리고 진실을 향한 집착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기자, 경찰, 시민이 각기 다른 시선에서 사건에 매달리며 드러나는 긴장과 아이러니는 지금 시대의 언론 윤리와도 연결된다.
언론 보도와 조디악 사건의 파급력
조디악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을 넘어 사회적 이슈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언론의 중개 역할이다. 조디악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신문사와 기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신문이 자신의 암호문과 메시지를 게재하지 않으면 추가 살인을 저지르겠다고 협박했고, 언론은 결국 이를 기사화했다.
영화 속 장면들은 기자가 얼마나 사회적 압력과 공포 확산 사이에서 갈등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언론은 사실 보도의 의무와 대중의 알 권리를 존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범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확대해주는 ‘도구’가 될 위험도 있다. 실제로 영화는 “우리가 보도함으로써 범인을 더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당시 언론 환경은 지금과 달랐다. 1960년대 후반, TV 뉴스와 지역 신문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고, 조디악은 이를 교묘히 이용했다.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 ‘이벤트 프로듀서’처럼 행동하며 사회의 시선을 장악했다. 이는 오늘날 SNS와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서 범죄나 테러가 언론을 통해 더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과도 연결된다. 즉, 조디악 사건은 과거의 미제 사건이지만 여전히 언론 윤리의 기준을 생각하게 하는 거울이 된다.
진실을 좇는 집착과 기자의 시선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원래 만화가였으나, 사건에 관여하면서 점점 기자적 집착을 보인다. 그는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조디악 암호 해독과 사건 추적에 빠져들며 결국 인생 전체가 사건에 매몰된다.
이 과정은 기자라는 직업이 가진 사명감과 위험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기자는 사실을 밝히고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지만, 그것이 과도하면 개인의 삶과 관계를 희생시킬 수 있다. 실제 영화에서 그레이스미스는 가족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사회적 신뢰마저 잃는다. 하지만 그의 집착 덕분에 사건에 관한 가장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기록이 남았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즉, 영화 조디악은 기자의 집착이 어떻게 사회적으로는 공헌이 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파멸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는 기자뿐 아니라 모든 진실 추적자에게 “진실을 향한 집착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경찰 수사와 언론 보도의 괴리
영화 속 경찰은 치밀한 수사 과정을 밟지만, 증거 부족과 행정적 제약으로 인해 진전을 보지 못한다. 반면 언론은 대중의 관심을 자극하기 위해 사건을 연일 다룬다. 이 두 영역은 협력하기보다 갈등을 빚는다. 경찰은 언론의 과도한 보도를 불편해하고, 언론은 경찰의 정보 은폐를 비판한다.
이 괴리 속에서 조디악은 더 큰 힘을 얻는다. 경찰은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하고, 언론은 추측성 기사로 대중의 불안을 키운다.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고, 사건은 사회적 집단 불안만 증폭시킨다.
미해결 사건이 남긴 사회적 집단 심리
조디악 사건의 가장 큰 특징은 끝내 범인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 미해결성을 긴장감의 핵심으로 삼는다.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단순히 법 집행 실패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불안을 남긴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미해결 사건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끊임없이 회자된다. 범죄가 단순히 ‘범인의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신화’로 변모하는 것이다. 조디악 사건도 실제로 수십 년간 수많은 책과 다큐멘터리, 기사에서 재해석되었고, 영화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기자 입장에서 미해결 사건을 다룰 때는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것 이상의 사회적 영향, 즉 공포와 호기심의 소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핵심적 고민이 된다.
핀처의 연출과 사실주의
데이비드 핀처는 조디악을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처럼 연출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사건의 지루한 수사 과정, 경찰의 서류 작업, 기자의 취재와 추적 같은 세부 과정을 집요하게 담아냈다. 이를 통해 영화는 ‘범죄’ 자체보다 ‘범죄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또한 핀처는 당시의 샌프란시스코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신문 기사, 수사 기록, 인터뷰를 치밀하게 조사했다. 영화의 색감, 카메라 앵글, 편집 리듬은 공포보다 집착과 무력감을 강조한다. 이로써 관객은 단순히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파고드는 사람들의 심리와 한계를 체험하게 된다.
기자·경찰·시민의 시선 차이
영화 속 세 그룹은 모두 조디악을 쫓지만, 그 목적과 태도는 다르다.
- 기자: 진실을 기록하고 대중에게 알리려는 사명감이 있으나, 동시에 기사화 과정에서 사건을 소비한다.
- 경찰: 법적 증거와 절차에 얽매여 있으며, 언론과 달리 조심스럽지만 그만큼 무력하다.
- 시민: 공포와 호기심을 동시에 가지며, 사건을 이야기로 소비한다.
결론
영화 조디악은 단순한 연쇄살인극이 아니라, 언론과 경찰, 그리고 집착에 휘말린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진실 추적의 본질을 묻는다. 기자에게 이 영화는 직업적 사명과 윤리, 그리고 집착의 위험성을 동시에 일깨운다.
조디악은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진실을 좇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기자뿐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강렬한 울림을 준다.